시민들이 고(故) 장자연 씨를 다시 세상에 불러냈다. 지난 2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장 씨 사건의 진실을 밝혀달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2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힘을 보탰다. 4월 2일 검찰 과거사위원회는 이 사건을 사전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이번에는 안타까운 죽음의 진실을 밝힐 수 있을까? 2009년 사건 발생 당시 경찰과 검찰의 수사는 상식 밖이었다. 장자연 씨가 남긴 문건에는 연예계, 재계, 언론계 인사 30여 명이 등장한다. 그러나 당시 경찰은 40명이 넘는 대규모 수사팀을 꾸려 27곳을 압수수색하고 14만여 건...
새해에도 한국사회는 박근혜 정권 뒤치다꺼리에 애를 먹을 듯하다. 위안부 협상은 뒤치다꺼리 중에서도 난제다. 지난해 12월27일 외교부 산하 태스크포스의 발표로 2015년 한‧일 위안부 협상의 전말이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는 일본 측의 대사관 앞 소녀상 이전 요구를 수용한 듯이 해석될 여지가 있는 내용을 비롯해 몇몇 민감한 사안을 이면합의 해주었다. 제3국의 위안부 기림비 설치를 정부가 지원하지 않겠다거나 ‘성노예’라는 표현은 쓰지 않는다는 등 일본 측 주장이 대부분 관철된 모양새다. 12월28일 문재인 대통령은 협상의 “중대한...
“다시 한번 확인하지만 KBS 내에 이른바 ‘블랙리스트’는 없다. 이번 김미화 씨의 트위터 발언은 PD의 제작 자율성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공영방송에 대한 심각한 훼손이다. 김 씨는 하루속히 언론에 나와 이번 일에 대한 해명을 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번 일을 계기로 공인의 인터넷 매체를 통한 무책임한 언행이 사회를 어지럽히고 불안하게 하는 고질적 풍토가 바뀌기를 바란다.”2010년 7월8일 중앙일보에 실린 길환영 당시 KBS 콘텐츠본부장의 기고 중 일부다. 앞서 6일 김미화 씨가 자신의 SNS에 “KBS 블랙리스트를 밝혀달라”...
한동안 잠잠한 듯했던 극우단체들이 성주 소성리에 나타났다. 사드 배치 찬성을 외치며 주민들에게 막말과 욕설을 퍼붓고 펼침막을 찢는 등 소동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들의 집회에서는 ‘대한민국이 종북좌파에게 넘어갔다’는 울분이 터져 나오고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부낀다. 지난 탄핵정국에서도 극우단체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며 탄핵반대를 외쳤다. 시민들은 태극기가 극우세력의 전유물인 양 쓰이는 것을 안타까워했고, 성조기가 등장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 박근혜 정권을 퇴장시키고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여전히 성조기 휘날리며 대한민국의 운명을...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소설가 한강을 블랙리스트에 오르게 했다는 ‘소년이 온다’의 한 구절이다. 소설은 광주항쟁을 다루고 있지만 곳곳에서 세월호를 떠올리게 한다. ‘나라’라는 것이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죽음을 무릅쓰고 이타적인 선택을 했을까, 타인의 죽음 앞에 내 삶이 장례식이 될 정도로 고통스러운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31일 세월호가 돌아왔다. 목포는 노랗게 물들었다. 각지에서 세월호를 찾는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있다. 미수습자 모두를 찾아 달라,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자, 잊...
모든 신화(神話)에는 신격(神格)이 있다. 이들은 대체로 비범한 능력을 갖고 민중을 구제하는 존재로 그려진다. 한국사회는 지난 수십 년간 박정희라는 신격이 등장하는 신화에 붙들려 있었다. 신화 속 박정희는 객관적 평가의 대상이 아니라 믿음과 숭배의 대상이며 그의 과오는 피할 수 없었던 운명이거나 다 나름의 뜻이 있는 것이다. 의문을 품는 사람들에게 신화는 꾸짖어왔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가 있었겠는가? 이 신화는 도무지 무너질 것 같지 않았다. 일부에서 박정희는 말 그대로 신이었다. 그를 ‘반신반인’이라 부르며 초상화에 ...
대통령의 정치 생명을 끝장낼만한 스캔들이 터졌다. 위기를 돌파하는 방법은 단 하나. 미디어와 국민의 눈을 다른 데로 돌리는 것이다. 안보에 대한 불안감을 부추기고 애국심을 고취시킬 수 있는 의제를 만들어 낸다. 예상대로 미디어는 던져주는 정보를 쫓아다니기 바쁘다. 이제 어느 누구도 대통령의 스캔들 따위에 관심을 갖지 않게 됐다. 대통령은 위기를 멋지게 돌파한다. 영화 ‘왝 더 독(Wag The Dog)’ 이야기다. 더스틴 호프만과 로버트 드 니로의 연기만으로도 볼만한 가치가 충분한 이 영화는 1997년 제작됐다. 거의 이십년 ...